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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이가 흔들린다면, 뇌도 살펴봐야 합니다" - 보행과 인지 기능의 숨겨진 연결고리

2026.04.20

넘어지는 것과 치매, 사실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다


부모님이 걸을 때 예전보다 발을 질질 끌거나, 걸으면서 말을 걸면 갑자기 멈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런 변화를 단순한 노화로 여겼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걸음걸이의 변화는 뇌 기능, 그중에서도 기억력과 집중력의 저하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2년 미국노인의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서 캐나다 웨스턴대학교 마누엘 몬테로-오다소 교수 연구팀은 보행 이상과 인지 기능 저하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낙상과 치매를 함께 예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걷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다


걷기는 그냥 다리를 움직이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뇌가 끊임없이 개입하는 고도의 인지 작업입니다. 균형을 잡고, 장애물을 인식하고, 방향을 조절하는 모든 과정에서 집중력과 판단력이 실시간으로 작동합니다. 특히 '실행 기능'이라 불리는 뇌의 전두엽 역량이 정상적인 보행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실행 기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기 시작하면, 걸음걸이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보폭이 불규칙해지거나, 발을 내딛는 타이밍이 들쭉날쭉해지는 식입니다. 연구팀은 이 '보행 변동성'이 뇌 기능 이상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걸으면서 말을 못 하면 낙상 위험이 높다"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중과제 보행 검사'입니다. 걸으면서 동시에 숫자를 세거나 대화를 나누는 동작인데, 뇌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때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지를 보는 방법입니다.


인지 기능이 정상인 노인은 걸으면서 말을 해도 걸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지 기능이 조금이라도 저하된 노인은 이중과제 상황에서 보폭이 눈에 띄게 불안정해집니다. 연구팀은 일상적인 보행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더라도 이중과제 테스트에서 걸음이 흔들린다면 이미 뇌의 인지 부하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집에서 간단히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걸으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눠보세요. 말을 걸 때마다 걸음이 멈추거나 눈에 띄게 느려진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치매 전 단계에서 이미 걸음이 달라진다


연구에서 가장 충격적인 발견 중 하나는 시간적 선후 관계입니다. 보행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은 치매 진단보다 최대 12년 앞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치매로 진단받기 한참 전부터 걸음걸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경도인지장애(MCI), 즉 치매 직전 단계의 노인들을 살펴보면 그 비율이 65세 이상 노인의 최대 19%, 85세 이상에서는 29%에 이릅니다. 이 단계의 노인들은 인지 기능이 정상인 또래와 비교해 낙상 위험이 이미 높아져 있고, 보행 이상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연구팀은 걸음걸이 평가가 뇌 기능을 들여다보는 창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뇌를 훈련하면 걸음도 나아진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지 기능을 개선하면 걸음걸이도 좋아질 수 있을까요? 연구팀이 검토한 여러 임상 연구들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컴퓨터 기반 인지 훈련을 8주간 받은 노인들은 일반 보행은 물론 이중과제 보행 속도도 개선됐습니다. 걷기와 동시에 공을 주고받거나 간단한 암산을 하는 복합 훈련을 12주 동안 진행한 치매 노인들도 복잡한 상황에서의 보행 능력이 의미 있게 향상됐습니다. 태극권이나 균형 훈련과 인지 훈련을 결합한 프로그램도 낙상 위험을 낮추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약물 측면에서도 치매 치료제로 사용되는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 계열 약물(도네페질, 갈란타민 등)이 보행 속도를 개선하고 보행 변동성을 줄이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물론 이들 연구는 아직 소규모 초기 단계이며 대규모 임상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은 연구팀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낙상과 치매, 따로 보지 말아야 한다


이 연구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낙상 예방과 치매 예방을 별개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낙상 예방 프로그램이 근력 강화, 균형 훈련, 약물 조정에 집중해 왔지만, 인지 기능이 저하된 노인에게는 그 효과가 제한적이었습니다. 뇌의 집중력과 판단력을 함께 다루지 않으면 낙상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입니다.


부모님의 건강을 살필 때, 다리 힘과 균형감만 볼 것이 아니라 대화 중 걸음의 변화, 복잡한 상황에서의 판단력 등 뇌와 몸이 함께 움직이는 방식에도 주의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Montero-Odasso, M., Verghese, J., Beauchet, O., & Hausdorff, J. M. (2012). Gait and cognition: A complementary approach to understanding brain function and the risk of falling. Journal of the American Geriatrics Society, 60(11), 2127–2136. https://doi.org/10.1111/j.1532-5415.2012.04209.x